가상시나리오

버그 펫(Bug Pet)

빈사평 2022. 10. 1. 16: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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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도시로 이사온 지 일주일이 지났다.

나는 이 도시에서 20분쯤 지하철을 타고 가는 다른 도시에서 평범한 직장인으로 일한다.

회사와 집을 오가는 다람쥐 쳇바퀴 생활은 정말 무료하고 

단조로와 스트레스로 작용되기도 하다.

이런 생활에서 나 스스로를 구원하고 삶의 의미를 찾지 않으면

나는 벌써 어떻게 됐을지도 모른다.

이전에 살던 동네도 마땅히 재미와 흥미를 찾을만한 것이 없었다.

치킨집, 세탁소, 편의점, 동네서적, 보습학원 등등 그저그런 가게들.

특히나, 장마철이면 그 습한 기운이 동네를 떠나지 않아

집안에 벌레들이 많이 끼기도 했다.

소심하고 겁많은 나는 덩치에 맞지 않게 벌레를 무서워한다.

아니 무서워한다기 보다는 트라우마를 갖고 있다.

어렸을 때 멋모르고 메뚜기를 갖고 놀다가 짖궃은 친구녀석이 그것을

발로 밟는 바람에 그 내장과 파편이 내 얼굴에 튄 적이 있다.

그때 받은 충격은 내 인생에서 벌레를 도둑이나 강도 또는 그 어떤 

무서운 것보다도 더 소름끼치는 것으로 만들어 버렸다.

 

새로 이사온 동네는 습하지는 않으나 집으로 들어오는 상점가에 야채가게가 많다.

xx마트, ㅇㅇ스토어, ㅁㅁ할인점 등에서 대부분 과일, 신선식품과 함께 야채를 팔고 있다.

야채가 많은 곳에 특히 벌레가 많다는 것을 나는 경험으로 알고 있다.

 

우리집은 그런 야채가게 골목의 바로 뒤 연립빌라 1층이다.

이사 오기전 미리 구충제를 뿌리고 깨끗하게 청소를 해서 아직까지는 벌레가 보이지 않는다.

내가 가장 싫어하는 벌레는 바퀴벌레...

남들은 대수롭지 않게 턱 잡아서 휴지에 싸서 버린다고 하는데

나는 어렸을 적 트라우마 때문인지 도저히 그렇게 안된다.

집 환기를 자주하고 청소기를 매일 돌려서 조금이라도 벌레가 꼬일 유인을 만들지 않는다

이렇게 한 2주 지났을까

드디어 사고가 터졌다.

 

퇴근하고 밤늦게 돌아와서 거실 불을 켰더니 바퀴 한가족 대여섯마리가

사사삭 부엌 싱크대 밑으로 번개같이 사라지는 것이다.

아 올것이 왔구나..생각하는 순간

이마에서는 식은땀이 맺히고

잊고 있었던 과거의 서늘한 감정이 솟아올랐다.

 

다음날 회사에서는 업무가 손에 잡히지 않고

어떻게하면 바퀴 가족을 싹 몰아낼까 연구를 했다.

동네 야채가게가 많고 우리집이 연립1층이라는 악조건이지만

반드시 바퀴를 제거할 방안이 있으리라

하루종일 인터넷을 뒤적이며 여기저거 검색하다가

드디어 찾았다!

 

최근에 다른나라에서 유행하는 방법인데 바퀴를 먹이감으로 삼는

애완 펫, 거미가 있다고 한다.

나는 퇴근하자마자 얼른 충무로 버그펫 가게로 날아갔다.

즐비한 가게들 사이에 A4용지로 "버그펫 입고"라는 작은 광고가 보인다

요즘 이런게 유행하는구나 라고 생각하고 가게에 들어가니

머리를 노랗게 물든인 약간 양아치같은 젊은 직원이

상냥한 미소를 띄우며 반갑게 반긴다.

직원은 나와 같은 고객이 가끔 찾아온다면서 바퀴벌레를 잡아먹는

엄지손가락만한 크기의 회색거미를 보여준다.

원래 이름은 뭐라뭐라 했는데 생각나지 않고 아무튼 2마리를 쌍으로 키우면

집에서 바퀴벌레가 사라진다고 한다.

자신의 핸드폰에 저장된 고객들의 감사편지도 보여주고

일본과 유럽에서 소개된 사이트 글도 보여주면서 우리나라도

아직은 덜 알려졌지만 조만간 입소문을 타고 빠르게 유행될 것이라고 한다.

가격은 조금 비싸서 한마리에 20만원인데 프로모션 중이라 2마리 한쌍에 35만원이라고 했다.

 

나는 조심스럽게 암수 한쌍을 집으로 갖고 와서 거실 소파 한켠에 조용히 녀석들을 놓아 두었다.

낯설어 하는 것 같이 움직이지 않다가 흰색 벽지를 타고 구석으로 사라진다.

얼른 우리 집에 적응해서 너희들의 실력을 보여다오.

왠지 든든한 반려견이나 반려묘를 기르는 집사가 된 느낌이다.

거미의 습성상 밝은 곳에는 잘 나오지 않는다고 해서 출근할때는 소등을 했고

주말에 집에 있을때도 거실의 작은보조등 말고는 조명을 다 껐다.

 

한 일주일 지났을까

퇴근해서 불을 켰을때 깜짝깜짝 놀라던 일은 사라졌다.

부엌 싱크대 밑에 한두마리 항상 있던 바퀴들도 안보였다.

녀석들이 일을 잘 한것인가.

내심 흐뭇한 미소가 지어졌다.

 

그런던 어느날

쓰레기를 버리려고 재활용 박스를 치우려다가

소스라치게 놀랐다.

거기에 바퀴들의 잘려진 파편들이 있는 것이 아닌가.

녀석들이 아마도 바퀴를 다 먹지 않고

일부는 이렇게 보관하는 습성이 있는 것 같아서

충무로 가게에 전화를 걸어보니

직원이 맞다고 확인을 해준다.

 

이 거미들은 바퀴를 발견해서 잡아먹다가도

다른 살아있는 바퀴를 발견하면

그 녀석을 처치한 후 기존의 바퀴는 토막내서

보관한다는 것이다.

암튼 다 먹어치우지는 않아도 대신 죽여주는 것이 어디냐 라는

생각에 좀더 지켜보기로 했다.

 

한 두달이 지났을까.

이제 녀석들은 주말에 조명이 켜진 거실에도 슬금슬금 모습을 보이더니.

내가 보이는 곳에까지 와서 조용히 움직인다.

거미는 정확히 말하면 벌레과가 아니고 절지동물이므로

나는 그닥 거부감이 들지 않는다.

무엇보다도 내가 가장 혐오하는 바퀴를 잡아주는 기특한 녀석들이라는

생각에 점점 정이 들어간다고 할까.

그렇게 해서 나는 바퀴 트라우마에서 조금씩 벗어나면서

일상생활을 영위해 나갔고 이 녀석들이 반려동물인양 버그펫이 된 느낌이었다.

우리(?)는 이렇게 한 공간에서 공동의 적을 물리치며 잘 살아왔다.

 

그러던 어느 주말

주말마다 내가 맥주를 마시며 영화를 보면은

슬글슬금 모니터 벽으로 나와서 영화 사운드를 즐기던

녀석들이 그날은 보이지 않았다.

사냥중이거나 다른 곳에 있겠거니하고 그냥 지나쳤는데

일주일이 지나고 다시 주말이 왔을때도 보이지 않았다.

 

대대적으로 집안을 여기저기를 뒤져보고

바퀴가 잘 나오던 곳, 파편을 잘 숨겨두던 곳 등등을

살펴봤지만 어디에도 녀석들이 보이지 않았다.

혹시 집을 나간 건가라는 생각에 충무로 가게에 전화를 했다

 

그 상냥한 직원은 그 거미들은 습성상

바퀴가 사라지면 바퀴가 있는 다른 곳을 향해

장소를 옮긴다고 한다

출가라고 하는데 보통 작은 집 같은 경우

몇개월만에 거미들이 보이지 않으면

그 집은 이제 바퀴청청구역이 됐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한다.

 

이 설명을 듣고 나는 바퀴청청구역이 된 내집을 생각하니 기쁘기도 하고

그래도 몇개월 같이 살았던 버그펫이 사라졋다는 생각에 서운하기도 했다.

 

버그펫과의 나의 추억은 이렇게 마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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